한 줄로 서지 말고 나란히 걷게
저는 올해 ‘고전읽기’란 과목을 가르치게 된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고전읽기는 교과서가 따로 없고 상중하 3단계로 절대평가하는 진로선택과목입니다. 상중하의 비율도 정해진 게 없고요. 게다가 등수를 공개하지 않으니 과도한 경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순수하게 고전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과목입니다. 그래서 실제 수업 중 고전 읽기 활동을 평가하는 100% 수행평가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학교 성적관리위원회에서 안 된다고 하더군요. 교육청 지침이라고.
서울시 교육청에서 만든 지침서 “2020학년도 학생평가 내실화 계획”의 핵심은 수행평가를 확대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수행평가 100% 실시 가능 과목으로 ‘기초교과를 제외’한 진로선택과목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즉 진로선택과목이지만 기초교과인 ‘고전읽기’ 같은 과목은 수행평가 100%를 실시할 수 없습니다.
수행평가를 확대하자면서 100% 실시하지 못하게 하는 근거를 알고 싶더군요. 법령에 근거한 것인가요? 훈령에 근거한 것인가요? 교육청에 전화해보니 법령도 훈령도 아닌 학부모의 민원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경기도 교육청 “2020학년도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시행지침”에 “교과목 특성상 수업활동과 연계한 수행평가만으로 평가가 필요한 경우 학교별 학업성적관리 규정으로 정하여 수행평가만으로 실시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경기도 교육청은 모든 과목에 대해서 수행평가 100%가 가능하도록 지침을 열어 둔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은 교과서도 없고, 등수로 평가하지도 않는 과목조차 수행평가 100%를 못하도록 가둬둔 것입니다.
교육청은 사기업 고객센터가 아닙니다. 매출을 위해 고객의 민원에 무조건 고개 숙일 것이 아닙니다. 옳은 것이라면 욕먹을 것을 감수하고 원칙을 지켜야죠. 교육법과 훈령에 따라 고시된 2015 교육과정에서 명시한 “수행평가의 비중을 확대한다”라는 원칙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교육은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게 아니라 나란히 걷게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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